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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체류기] 성배, 그리고 양들의 침묵

글쓴이 | 이문식

내가 찾은 성배


2011년 4월 22일 고난주간 성금요일이다. 오전에 구 예루살렘성 안으로 들어가 예수님의 골고다 처형 자리에 세워진 성묘교회를 방문했다. 교회 안에서는 특별미사가 진행되고 있었고 교회 밖 마당에는 전 세계에서 온 모든 종파의 기독교도들이 모여서 각기 자기들의 예전에 따라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나도 아내와 함께 그곳에서 예배를 드렸다. 군데군데 한국에서 온 성지순례단이 특유의 큰 소리로 찬송을 부르며 요란스럽게 합심 기도를 하는 모습이 보인다. 한마디로 성묘교회 마당의 예배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어린양 보좌 앞에서의 종말론적 예배 그 자체이다. 세계 각국에서 온 형형색색의 인간들이 그들 민족 특유의 의상과 종파의 예복을 입고 각기 다른 방언과 노래로 한꺼번에 경배하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고난주간 성금요일의 성묘교회 마당은 그야말로 우주적 교회가 함께 예배드리는 영광의 지성소이다.

▲ 세계 각처에서 온 유월절 순례자들

▲ 세계 각처에서 온 유월절 순례자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요한계시록 7:9-10)

▲ 성묘교회 제단 바위

▲ 성묘교회 제단 바위

긴 기다림 끝에 성묘교회 안에 있는 골고다 처형 장소에 도달했다. 수많은 순례자들이 예수의 십자가 세로목이 세워졌다고 전해지는 움푹한 바위 구멍 안에 손을 넣고 기도한다. 개신교 목사로서 이런 전설이나 태도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나 그저 평범한 한 순례자의 호기심으로 나도 그 움푹한 바위 구멍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 구멍은 직경 20cm정도 되는 사각형의 형태로 깊이도 20cm 정도였다. 이 바위 구멍에 손을 집어넣는 순간 ‘정말 이곳이 예수님의 십자가 나무가 서 있던 자리인가? 만일 이곳이 성서고고학적으로 믿을 수 있는 바로 그 자리라면 바로 이 구멍 안에 예수님의 보혈이 고여 차서 넘쳤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예수님의 손과 발에 박힌 못에서 흘러내린 피는 십자가 종목을 타고 내려와 바로 이 바위 구멍 안을 가득 채웠을 것이다. 그 순간 나는 갑자기 기독교 역사 2000년 동안 내려온 전설 중의 하나인 성배를 드디어 내가 발견했다는 엉뚱한 생각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성배(聖杯)는 일반적으로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사용했던 술잔을 가리킨다. AD 12세기 후반 로베르 드 보롱이 쓴 ‘성배 이야기의 낭만’(Roman de l’estoire du Seint Graa1)에 따르면,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이 술잔을 선물로 받았다고 한다. 이후 아리마대 요셉은 이 성배를 가지고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박해를 피해 지금의 영국인 그레이트브리튼 섬으로 이주했다. 그래서 켈틱교회에는 이 성배와 연관된 수많은 전설들이 생성됐다. 12세기 후반에 크레티앵 드 투루아가 ‘빛의 잔’을 찾아 초자연적인 모험의 길을 떠나는 원탁의 기사 퍼시벌(Percival)의 생애를 다룬 ‘성배이야기’를 썼다. 1470년 토마스 말로리(Thomas Malory) 경이 쓴 ‘아더왕의 죽음’에 이르면, 성배의 전설은 좀 더 구체적으로 발전된다. 성배는 예수의 가나 혼인 잔치와 최후의 만찬에서 쓰였으며, 특히 예수의 옆구리를 찌른 창의 상처에서부터 아리마대 요셉이 그의 피를 직접 받는데 쓰였다는 것이다. 최근 댄 브라운이 쓴 ‘다빈치 코드’로 인하여 이 성배이야기는 다시 크게 주목받았다. 댄 브라운은 ‘술잔’으로 이해되어온 기존의 성배에 관한 개념을 아주 파격적으로 재해석하였다. 댄 브라운은 성배는 술잔이 아니라 예수의 혈통을 그 몸에 담은 여자 ‘막달라 마리아의 자궁’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댄 브라운의 이런 주장은 초대 기독교 이단인 그노시스파로부터 영향 받은 것이다. 그노시스주의자들은 예수의 성육신의 신성을 부인하기 위하여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주장을 가라지처럼 뿌려왔다.

▲ 모형 성배

▲ 모형 성배

이러한 성배에 관한 재해석의 오랜 논쟁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가운데, 나는 갑자기 ‘그래 이 바위가 바로 성배다’라는 생각에 불현듯 사로잡혔다. 예수의 보혈은 아리마대의 요셉의 성배에 먼저 채워진 것이 아니다. 예수의 피가 제일 처음 담겨진 공간은 바로 이 곳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피는 로마군병의 사망확인과정 중에 찔려진 옆구리 창 자국에서 먼저 흘러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초의 보혈은 손과 발의 못 자국에서부터 흘러내렸다((요19:33-34). 그리고 십자가 종목을 세우기 위하여 파놓은 이 바위구멍에 먼저 채워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난 2000년 동안 이곳에 찾아와 이 바위틈에 손을 넣고도 이곳이야말로 예수님의 보혈이 가장 먼저 차고 넘친 장소라는 생각을 아무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마치 내 자신이 성배의 기사 퍼시벌이 된 듯한 감흥에 사로잡혔다. 2000년 동안 기독교 세계의 수많은 순례자들이 그렇게 평생을 바쳐 찾아 헤맸던 성배는 아리마대 요셉의 포도주 잔이 아니라, 바로 이 갈보리 십자가 자리,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 ‘바위 성배’를 발견한 최초의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문학적 상상력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골고다 언덕에서 새로운 ‘성배의 기사’로 거듭나고 있었다.

양들의 침묵

 

이렇듯 성 금요일에 이루어진 분묘교회 안에서의 성배 체험은 나로 하여금 나흘 전에 방문했던 그리심 산 유월절 제사를 다시 회상하게 했다. 매년 유월절이 다가와도 예루살렘에는 어떠한 제사도 거행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예루살렘 성전은 AD 70년에 파괴된 체로 아직 재건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 자리에는 이슬람사원의 황금 돔이 자리 잡고 있다. 오늘날 유대인 공동체 안에는 제사장 그룹이 존재하지 않는다. AD 70년의 성전파괴 이후 유대인들의 신앙은 성전 중심이 아니라 회당 중심으로 바뀌었고, 제사 중심이 아니라 토라 중심으로 바뀌었다. 따라서 오늘의 예루살렘에는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단 한 방울도 흐르지 않는다. 그러나 사마리아 오경에 따라 그리심 산을 예배처로 여기는 사마리아인들은 오늘날에도 매년 유월절이 다가오면 사마리아 제사장들에 의해 유월절 제사가 행해진다. 비록 모세오경과 다른 전통에 따라 진행되는 유월절 제사이지만 구약의 제사장들이 거행했던 이스라엘의 제사와 가장 가까운 형태로 거행되는 제의이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전 세계의 수많은 성경학자들과 순례자들이 유월절 전날 바로 이 그리심 산 성소를 방문한다. 나도 4월 18일 저녁에 거행되는 이 그리심 산 유월절을 직접 보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부터 중부 산악지대를 따라 벧엘과 아이를 거쳐 그리심 산으로 올라갔다. 사마리아 제사장들이 어린양을 잡고 가죽을 벗기고 각을 떠서 매달아 놓고 그 피를 받는 장면과 그 피를 제단에 뿌리는 모습, 그리고 어린양을 번제로 태우는 장면 이어 대제사장이 온 회중을 축복하는 순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거행되는 제사장 공동체들의 유월절 제의식사 등을 바로 눈앞에서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었다. 전 세계에서 일 년에 딱 한번만 거행되는 이 특별한 유월절 제사에 맞추어서 수많은 순례자들이 그리심 산으로 모여든다. 나도 좀처럼 갖기 어려운 이 특별한 기회를 가진 축복된 순례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 사마리아 유월절 의식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특히 제사장들 한 사람마다 한 마리씩의 어린양을 속죄양으로 하나님께 드리기 때문에 그리심 산 제사 마당에는 수를 셀 수 없는 수많은 어린양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간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많은 양들 중에 어느 한 마리 양도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너무도 고요하게 피를 흘리며 침묵 속에서 몸을 바들바들 떨다가 양들은 숨을 거둔다. 이 양들의 침묵 앞에서 나는 예수님의 침묵을 깊이 묵상하게 되었다. 신약성경은 예수님이 체포된 이후로 그 다음날 오후 3시 숨을 거두실 때까지 그 긴 시간 동안에 진행된 재판과 고문, 그리고 처형과정에서 철저히 침묵하셨음을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 침묵하시거늘” (마태복음 26:63)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 53:7)

사실 그리심 산에서의 유월절 의식은 상당히 소란스러운 가운데 진행된다. 전 세계에서 온 순례자들과 사진작가들이 좀처럼 보기 드문 이 제사 의식을 찍기 위하여 분주하게 뛰어다니며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러댄다. 이 제사 장소는 마치 야구장처럼 생겼다. 제사 장면을 구경할 수 있도록 계단으로 된 관람석이 철망으로 둘러싸인 제사 장소를 사방으로 둘러싸고 있다. 이 관람석은 오전 일찍부터 찾아온 순례자들로 인하여 오후에는 이미 꽉 차게 되고, 순례자들은 차지한 자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간편한 야식으로 저녁을 때우며 한 밤의 제사의식을 기다린다. 나도 미리 숙소에서 준비해 간 김밥과 컵라면으로 저녁을 때웠다. 이처럼 긴 기다림 때문인지 막상 이 유월절 제사가 시작될 때쯤에는 사방의 관람석에서 세계 각국에서 온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언어로 서로 이야기하고 떠들고 손가락질 하며 사진을 찍는다. 또 성소를 둘러싸고 있는 보호 철망에는 사람들이 이중 삼중으로 달라붙어서 경쟁적으로 철망 밖으로 카메라를 들이밀고 계속 자동셔터를 누른다. 철망 안 성소에서는 사마리아 제사장들이 큰 소리로 찬송과 기도를 반복하며 마치 합창하듯이 열정적으로 제사를 드린다. 그래서 그리심 산 제의는 온통 커다란 소음으로 가득차서 진행된다.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은 이 밤에 제각기 입을 벌리고 온갖 소음을 크게 토해낸다. 그러나 오직 어린양들만 고요히 침묵 속에서 죽어간다. 이 양들의 침묵은 나로 하여금 긴 침묵 속에 운명하신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리게 한다. 나의 유월절 묵상은 이렇게 ‘성배’와 ‘양들의 침묵’사이에 길게 이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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